보안과 프라이버시를 이야기할 때 자주 등장하는 용어들이 있습니다. 익명성에 특화된 브라우저인 Tor, 언론에서도 심심찮게 접하는 VPN은 이미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실 겁니다. 그런데 여기에 또 하나의 선택지가 있습니다. 바로 I2P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도구가 나에게 맞을까요? 이 글에서는 I2P, Tor, VPN의 작동 원리와 각각의 장단점을 살펴보고, 상황별로 어떤 도구를 선택해야 하는지 알려드리겠습니다.
Tor(토르)란 무엇인가?
'Tor'라는 이름은 원래 프로젝트 명칭인 The Onion Router(양파 라우터)에서 유래했습니다. Tor는 웹 트래픽을 전 세계에 흩어진 수많은 중계 노드를 통해 전달하는데, 이 방식을 '어니언 라우팅(onion routing)'이라고 부릅니다. 데이터가 마치 양파 껍질처럼 여러 겹의 암호화 층을 통과하기 때문입니다.
Tor는 단순히 데이터를 여러 층으로 감싸는 것뿐만 아니라, 다음 노드의 IP 주소까지 포함한 모든 네트워크 트래픽을 암호화합니다. 암호화된 데이터는 무작위로 선정된 여러 릴레이 서버를 거치며, 이동 과정에서는 각 구간마다 오직 '다음 노드'의 주소를 담은 한 겹의 암호만 해제됩니다.
마지막 출구 노드(exit node)에 도달하면 패키지 전체가 복호화되고, 데이터는 최종 목적지로 전송됩니다. 이 과정에서 발신자의 IP 주소는 어느 시점에도 노출되지 않습니다.
Tor 사용 방법
Tor를 사용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Tor 브라우저를 이용하는 것입니다. 일반 프로그램처럼 다운로드하여 설치하고, 최초 실행 후 간단한 설정을 마치면 바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다만 여러 릴레이를 거치다 보니 일반 브라우징보다는 속도가 다소 느리다는 점은 감안해야 합니다.
왜 Tor를 사용해야 할까?
Tor 브라우저는 모든 데이터 전송을 암호화하기 때문에 활용 범위가 매우 넓습니다. 저널리스트, 해커, 정부 기관, 그리고 범죄자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사용합니다. 실제로 Tor는 미국 해군 연구소와 DARPA의 프로젝트로 시작되었습니다.
Tor 브라우저는 다크웹(dark web)으로 들어가는 대표적인 통로이기도 합니다. 다크웹은 우리가 매일 이용하는 일반적인 '표면 웹(surface web)'과 달리, 일반 검색엔진으로는 접근할 수 없는 숨겨진 영역입니다. 불법 물품을 거래하는 온라인 마켓에 관한 뉴스를 들어본 적이 있다면, 그 사이트들은 대부분 다크넷에서 호스팅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Tor가 비밀 마켓이나 은밀한 통신만을 위한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항공권 가격을 알아볼 때 Tor를 활용할 수도 있습니다. 항공사는 방문 기록과 IP를 추적해 관심이 높다고 판단되면 가격을 올리는 경우가 많은데, Tor 브라우저로 동일한 항공편을 조회하면 의외의 할인가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Tor는 내 프라이버시를 지켜줄까?
네, Tor는 처음부터 끝까지 프라이버시 보호를 위해 설계되었습니다. Tor 브라우저로 인터넷을 검색하는 수준이라면 눈에 띌 걱정은 없습니다. 다만 철저한 프라이버시 옹호자들 사이에서는 Tor 네트워크가 이미 침해됐다는 의견도 존재합니다. 미국 국가안보국(NSA)의 감시 프로그램 XKeyscore는 Tor 공식 페이지를 방문해 Tor 브라우저를 다운로드한 모든 사용자를 기록하며, 설치까지 한 사람들을 '잠재적 극단주의자'로 분류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즉, 안타깝게도 감시 목록에 올라갈 가능성이 있다는 뜻입니다. 참고로 리눅스 사용자도 같은 취급을 받는다고 하니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중요한 점 하나를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Tor는 Tor 브라우저 내부에서 오가는 데이터만 암호화할 뿐, 운영체제 전체의 네트워크 활동을 암호화하지는 않습니다.
Tor를 더 안전하게 사용하고 싶다면, 위험에 노출된 Tor 출구 노드를 피하는 방법을 함께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I2P란 무엇인가?
Invisible Internet Project(I2P)는 '갈릭 라우팅(garlic routing)' 프로토콜을 사용하는 네트워크입니다. 갈릭 라우팅은 Tor의 어니언 라우팅에서 파생된 변형 방식입니다.
I2P는 '익명 오버레이 네트워크'로, 여러 메시지를 하나로 묶어 동시에 암호화함으로써 트래픽 분석을 어렵게 만들면서도 전송 속도를 높입니다. 이름 그대로 마늘에 비유할 수 있는데, 개별 메시지는 '마늘 알맹이(garlic clove)', 암호화된 묶음 전체는 '마늘통(bulb)'에 해당합니다. 각 메시지에는 고유한 전달 지침이 포함되며, 엔드포인트는 암호학적 식별자(공개 키 쌍 중 하나) 역할을 수행합니다.
각 I2P 클라이언트(라우터)는 인바운드·아웃바운드 '터널'을 직접 구축해 P2P 방식으로 연결됩니다. 일반 P2P 네트워크와의 가장 큰 차이점은 터널 길이를 사용자가 직접 선택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터널 길이는 익명성, 지연 시간, 개인 처리량에 영향을 미치며, 개별 피어의 위협 모델(threat model)을 구성하는 요소이기도 합니다.
그 결과, 각 송신자와 수신자의 위협 모델에 따라 필요한 최소한의 피어만 메시지를 중계하게 됩니다.
I2P 사용 방법
I2P를 사용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공식 설치 패키지를 내려받아 설치하는 것입니다. 설치 후 Start I2P(restartable)를 실행하면 로컬에서 호스팅되는 웹 페이지가 열립니다. 이것이 바로 I2P 라우터 콘솔로, I2P 연결을 유지하는 가상 라우터 역할을 합니다. 함께 열리는 I2P 서비스 명령 창은 종료하지 말고 백그라운드에 두면 됩니다.
I2P 서비스가 완전히 구동되기까지 몇 분 정도 걸릴 수 있으며, 특히 첫 실행 시 더 오래 소요됩니다. 그사이 대역폭 설정을 조정해두는 것이 좋습니다.
I2P에서는 '이프사이트(eepsite)'라고 불리는 숨겨진 웹사이트를 만들고 호스팅할 수도 있습니다. 이프사이트에 접속하려면 브라우저에 I2P 전용 프록시를 설정해야 하며, 관련 설정 정보는 I2P 공식 문서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왜 I2P를 사용해야 할까?
I2P와 Tor는 대체로 비슷한 브라우징 경험을 제공합니다. 대역폭 설정에 따라 다르지만, I2P가 Tor보다 다소 빠른 편이며 기존 브라우저에서도 편하게 실행할 수 있습니다. 특히 I2P에는 Tor 기반 서비스보다 속도가 빠른 히든 서비스가 많아서, 느린 Tor 네트워크에 답답함을 느낀 사용자에게 매력적인 선택지가 됩니다.
I2P는 일반 인터넷 연결과 병행하여 작동하며 브라우저 트래픽을 암호화합니다. 다만 오픈 웹을 익명으로 탐색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습니다. 트래픽이 일반 인터넷으로 빠져나가는 지점인 '아웃프록시(outproxy)'의 수가 제한적이어서, 이런 방식으로 사용하면 익명성이 크게 떨어집니다.
I2P는 내 프라이버시를 지켜줄까?
결론부터 말하면 네, 잘 지켜줍니다. 다만 일반 웹 브라우징용으로 사용할 때는 예외입니다. 그 경우에도 내 트래픽을 추적하려면 상당한 자원이 필요합니다. I2P는 분산형 P2P 모델을 활용해 데이터 수집, 통계 집계, 네트워크 전체 분석 자체를 어렵게 만듭니다. 여기에 갈릭 라우팅이 여러 메시지를 함께 암호화하기 때문에 트래픽 분석도 훨씬 까다롭습니다.
앞서 설명한 I2P 터널은 단방향(unidirectional) 구조입니다. 데이터는 한 방향으로만 흐르며, 들어오는 터널과 나가는 터널이 분리되어 있어 모든 피어에게 추가적인 익명성을 제공합니다.
단, I2P 역시 설정된 브라우저를 통해 오가는 데이터만 암호화합니다. 시스템 전체의 네트워크 활동을 암호화하지는 않습니다.
VPN이란 무엇인가?
마지막으로 가상 사설망(VPN)입니다. VPN은 Tor와 I2P와 작동 방식이 다릅니다. 브라우저 트래픽에만 초점을 맞추는 대신, 시스템의 모든 수신·발신 네트워크 트래픽을 암호화합니다. 그만큼 일반 사용자에게는 가장 간편한 데이터 보호 수단이지만, 몇 가지 주의할 점도 있습니다.
VPN의 작동 원리
평소에 웹 브라우저에서 링크를 클릭하거나 화상 통화를 시작하면, 요청이 해당 데이터를 보유한 서버로 전송되고 결과가 다시 돌아옵니다. 이 연결은 대부분 암호화되어 있지 않아서, 컴퓨터 지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가로챌 수 있습니다(HTTP 대신 HTTPS를 쓰지 않는 경우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반면 VPN은 미리 지정된 사설 서버에 연결해 '터널'이라 불리는 직접 연결을 생성합니다. 내 시스템과 VPN 서버 사이의 연결은 물론, 오가는 모든 데이터가 암호화됩니다.
VPN은 컴퓨터에 설치하는 클라이언트 프로그램을 통해 이용합니다. 대부분의 VPN은 공개 키 암호 방식(public-key cryptography)을 사용하는데, 클라이언트에 로그인하면 공개 키를 교환하여 연결을 확인하고 네트워크 트래픽을 보호합니다.
왜 VPN을 사용해야 할까?
VPN은 네트워크 트래픽 전체를 암호화하므로, 내 시스템에서 일어나는 모든 인터넷 활동을 외부의 시선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습니다. 최근 몇 년간 VPN 사용량이 폭발적으로 증가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VPN은 다음과 같은 상황에서 특히 유용합니다.
- 공공 Wi-Fi에서 데이터를 안전하게 보호
- 지역 제한 콘텐츠 우회 접속
- 민감한 정보에 접근할 때 추가 보안 계층 확보
- 정부 기관 등 침입적인 감시로부터 프라이버시 보호
VPN은 내 프라이버시를 지켜줄까?
네, VPN은 프라이버시를 보호해 줍니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주의사항이 여기서 등장합니다. 대부분의 경우 '값싼 것이 비싼 것이다'라는 말이 들어맞습니다. 무료 VPN이 많지만, 생각만큼 철저하게 보호해 주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많은 무료 VPN 업체는 사용자의 모든 인터넷 트래픽을 로그로 기록합니다. 암호화 덕분에 데이터 자체는 안전하지만, 결국 내가 무엇을 했는지에 대한 기록은 남는 셈입니다. 대부분의 VPN 업체가 임의로 정보를 넘기지는 않지만, 법적으로는 수사 기관의 요청(영장 제출)이 들어오면 보유한 정보를 제출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진정으로 안전한 무로그(logless) 연결을 원한다면, 프라이버시 중심의 신뢰할 만한 VPN 업체를 꼼꼼히 비교해 보는 것이 좋습니다.
그럼에도 VPN은 기존 브라우저를 바꾸거나 평소의 인터넷 사용 습관을 변경하지 않고도 프라이버시를 되찾을 수 있는 탁월하고 간편한 방법입니다. 이 옵션을 고려 중이라면, VPN 킬 스위치(kill switch) 기능도 함께 알아두시길 권합니다.
Tor vs I2P vs VPN 요약: 무엇을 선택해야 할까?
세 도구의 특성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Tor: 최고 수준의 익명 브라우징, 온니언 사이트 및 다크웹 접속이 필요하고 인터넷 속도 저하를 감수할 수 있다면 선택하세요.
- I2P: 분산 P2P 네트워크 기반의 히든 서비스와 메신저에 익명으로 접속하고 싶고, 속도 저하를 감수할 수 있다면 선택하세요.
- VPN: 시스템 전체의 수신·발신 트래픽을 암호화하고 싶고, 약간의 속도 저하를 감수할 수 있다면 선택하세요.
무로그 VPN 위에 Tor 브라우저를 얹어 사용하는 사람도 있고, 카페에서 인터넷 뱅킹을 할 때만 무료 VPN을 잠깐 켜는 사람도 있습니다(이건 아주 현명한 습관입니다). 어떤 방식이든 VPN은 이제 누구나 고려할 만한 필수적인 보안·프라이버시 기술입니다.
VPN 옵션에 관심이 있지만 어떤 제품이 맞는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면, 가성비 좋은 Surfshark VPN 리뷰부터 살펴보는 것을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