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텔의 최신 12세대 프로세서와 AMD 라이젠 라인업이 여전히 뛰어난 성능을 자랑하지만, ARM 아키텍처를 채택한 애플의 M1 실리콘은 x86 칩보다 월등히 높은 효율성을 보여줍니다. 덕분에 최신 맥북 라인업은 PC 대비 훨씬 긴 배터리 수명과 낮은 발열을 구현할 수 있었습니다.
2021년 퀄컴은 누비아(Nuvia)를 인수하며 인텔과 AMD를 겨냥했습니다. 이 작은 스타트업은 컴퓨터 워크로드에 최적화된 ARM 칩 설계에 특화된 기업입니다. 과연 이것이 윈도우용 고성능 ARM 칩의 서막일까요? 그리고 이 변화는 우리와 컴퓨팅의 미래에 어떤 의미를 가질까요?
실패로 끝난 Windows RT

최초의 ARM 기반 윈도우 기기는 2012년 Windows RT와 함께 등장했습니다. 태블릿처럼 가볍고 휴대성이 뛰어난 기기를 겨냥해 설계되었지만, 출시에 대한 반응은 기껏해야 미지근한 수준이었습니다.
원인 중 하나는 Windows RT가 상대적으로 성능이 낮은 하드웨어에서 구동되었고, 어떤 x86 앱이든 실행할 수 있는 일반 Windows 8과 달리 마이크로소프트 스토어의 앱만 설치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마이크로소프트는 2015년 해당 OS의 업데이트를 중단하고, ARM과 x86 프로세서를 모두 지원하는 Windows 10에 역량을 집중하게 됩니다.
퀄컴과 Windows 10의 독점 관계

Windows RT가 기대만큼의 성과를 내지 못했지만, 마이크로소프트는 여전히 ARM 프로세서의 잠재력에 주목하고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2016년 퀄컴과 독점 계약을 체결해 퀄컴 프로세서를 윈도우 생태계에 통합했습니다.
이는 OS와 퀄컴 ARM 칩 간의 호환성 측면에서는 반가운 소식이지만, 미디어텍 같은 다른 칩 제조사의 시장 진입을 막는 장벽이기도 했습니다. ARM 호환임에도 Windows 11이 애플 M1 실리콘을 구동할 수 없는 이유 역시 이 독점 계약 때문으로 추측됩니다.
그러나 XDA에 따르면 퀄컴과 마이크로소프트 간의 계약에는 만료일이 존재합니다. 정확한 종료 시점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조만간 만료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계약이 종료되면 다른 칩 제조업체들도 마이크로소프트와 협력해 자사 칩과 윈도우의 호환성을 확보할 수 있게 됩니다.
ARM 경쟁에서 마이크로소프트를 제친 애플

마이크로소프트가 x86과 ARM 양쪽을 함께 지원하는 전략을 유지하는 동안, 애플은 과감하게 올인을 선택했습니다. 2020년 11월 M1 기반 맥과 아이패드를 출시한 것입니다. 이 ARM 프로세서는 MacBook Air, MacBook Pro, Mac mini, iMac, iPad Pro를 구동했습니다.
ARM 프로세서의 성능 덕분에 이 기기들은 11세대 인텔 i7 칩과 동등하거나 그 이상의 성능을 발휘했습니다. 하지만 M1을 진정으로 특별하게 만든 것은 압도적인 전력 효율입니다.
테스트 결과에 따르면 ARM 기반 M1 노트북은 완충 시 16시간 이상 사용할 수 있는 반면, 가장 근접한 x86 경쟁 제품은 약 12시간에 그쳤습니다. 나아가 칩 설계가 워낙 효율적이라 보급형 MacBook Air M1에는 냉각 팬조차 탑재되지 않았습니다.
삼성전자와 AMD의 파트너십

2019년 삼성전자는 AMD와 파트너십을 체결하고 자사 프로세서에 AMD의 GPU 기술을 통합하기 시작했습니다. 2021년에는 이 협력이 엑시노스 2200(Exynos 2200)으로 결실을 맺었다는 여러 단서가 포착되었습니다.
업계에 잘 알려진 테크 정보통에 따르면, 삼성 갤럭시 S22에 탑재될 것으로 예상되는 이 신형 칩은 이전 세대 엑시노스 2100 대비 지속 성능이 20%, 순간 최대 성능은 34% 향상되었습니다. 또한 3DMark 벤치마크에서 스냅드래곤 888보다 우위를 점했습니다.
삼성 전문 매체 SamMobile은 이 칩이 스마트폰의 좁은 폼팩터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냉각 성능을 요구하며, 실제 성능이 열 설계에 의해 제한된다고 분석합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삼성이 노트북이나 데스크톱처럼 강력한 냉각 솔루션을 적용할 수 있는 기기에 엑시노스 2200을 공급하는 것은 충분히 합리적인 전략입니다.
미디어텍의 야심

퀄컴에 이어 미디어텍 역시 세계 최대 스마트폰 칩 제조사 중 하나입니다. 2021년 11월 열린 Executive Summit에서 미디어텍은 윈도우용 ARM 기반 칩 개발 계획을 공식 발표했습니다.
미디어텍 기업판매 및 사업개발 부사장 에릭 피셔(Eric Fisher)는 "애플은 세계에 그것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증명했습니다. 오랫동안 이어져 온 윈텔(Wintel) 동맹은 이제 압박을 받고 있으며, 압박이 있는 곳에 우리 같은 회사들의 기회가 있다"고 밝혔습니다.
당장 칩 출시를 기대하기는 어렵지만, 미디어텍은 이미 크롬북용 콤파니오(Kompanio) 프로세서와 인텔 PC용 5G 모뎀을 생산하고 있습니다. 이는 윈도우 기기용 ARM 칩 개발이라는 목표를 향해 이미 올바른 궤도에 올라섰음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퀄컴의 누비아 인수

2021년 1분기, 퀄컴은 고성능 칩 설계 전문 스타트업 누비아(Nuvia)의 인수를 공식 확정했습니다. 퀄컴은 이미 PC용 최상위 칩인 스냅드래곤 8cx Gen 3와 보급형 스냅드래곤 7c+ Gen 3를 선보이고 있지만, 윈도우 노트북과 데스크톱 시장에서 점유율을 확보하기까지는 갈 길이 멉니다.
게다가 애플이 이미 선두를 달리는 ARM 컴퓨터 경쟁이 본격화되면서, 퀄컴은 칩 성능을 한층 더 끌어올려야 하는 상황입니다. Geekbench 5 결과에 따르면 최신 스냅드래곤 8cx Gen 3는 처리 능력 면에서 애플 M1에 크게 뒤처집니다. 성능을 크게 저하시키는 가상 머신 환경에서 윈도우를 구동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누비아의 기술력을 흡수한 퀄컴은 이제 인텔과 AMD의 x86 제품은 물론 애플의 M1 실리콘에 정면으로 맞설 수 있는 고성능 ARM 칩을 개발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Windows 11과 안드로이드 앱 생태계

열악한 하드웨어 성능 못지않게 Windows RT의 성공을 가로막은 결정적인 걸림돌은 턱없이 부족한 앱 생태계였습니다. 윈도우 사용자는 방대한 소프트웨어 선택지에 익숙합니다. 하지만 애플이 로제타 2(Rosetta 2)로 입증했듯이, x86-64 환경을 에뮬레이션하면 최소한의 성능 저하만으로 레거시 앱을 구동할 수 있습니다.
Windows 10과 마찬가지로 Windows 11 역시 ARM 프로세서를 네이티브로 지원합니다. 이를 통해 Windows RT와 Windows 8 시절의 소비자 혼란이 줄어들었고, 마이크로소프트는 ARM 기반 윈도우 기기가 기존 x86 윈도우 PC와 다를 바 없다는 점을 명확히 보여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나아가 Windows 11은 별도의 서드파티 프로그램 없이도 x86-64 에뮬레이션을 기본 지원해 ARM과 윈도우의 통합을 한층 강화했습니다.
여기에 마이크로소프트가 Amazon Appstore를 통해 Windows 11에서 안드로이드 앱을 사용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구글 역시 윈도우용 안드로이드 게임 지원에 나서면서, 조만간 Google Play 스토어의 방대한 앱들이 윈도우에서도 이용 가능해질 가능성이 열리고 있습니다.
x86은 사라지는가?
애플이 컴퓨터용 ARM 프로세서의 한계를 끊임없이 밀어붙이는 가운데, 윈도우 진영 역시 이에 필적하는 경험을 제공해야 하는 압박에 직면해 있습니다. 인텔과 AMD의 최신 x86 칩은 애플 M1과 경쟁하거나 능가하는 성능을 내지만, 정작 효율성 면에서는 따라잡기 어려운 실정입니다.
당분간 x86 칩을 계속 볼 것으로 예상되지만, ARM 프로세서는 느리지만 확실하게 입지를 넓혀가고 있습니다. 세계 최대 클라우드 서비스 업체 AWS와 당시 세계 최고 속도를 자랑하던 슈퍼컴퓨터 후가쿠(Fugaku) 역시 ARM 칩으로 구동됩니다.
ARM이 미래에 x86을 완전히 대체할지는 시간이 답해줄 문제입니다. 하지만 그때까지 두 아키텍처 간의 혁신과 경쟁은 소비자인 우리에게 컴퓨터를 고를 때 더 많은 선택지를 안겨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