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컴퓨터를 사용할 때 우리는 대개 위협이 소프트웨어 차원에서 다가온다고 생각합니다. 하드웨어 자체가 바이러스나 각종 악성코드의 통로가 될 수 있다는 발상은 좀처럼 떠오르지 않죠.
하지만 해커는 시스템 침투 기회라면 어떤 것이든 놓치지 않으며, CPU 역시 그 통로가 될 수 있습니다. 2018년 초에는 인텔 CPU에서 '멜트다운(Meltdown)'과 '스펙터(Spectre)'로 불리는 취약점들이 발견되었습니다. 그리고 같은 해 3월 14일, CTS-Labs라는 회사가 AMD 최신 프로세서 라인업에서 또 다른 취약점들을 발견했다고 발표했습니다. 다만 이번에는 보고서가 공개되는 방식이 다소 파격적이었습니다.
발견된 취약점은 무엇인가

CTS-Labs가 발견한 13개의 취약점은 해당 업체의 보고서에 정리되어 있으며, 크게 네 가지 범주로 묶여 있습니다.
- 라이젠폴(Ryzenfall)
- 폴아웃(Fallout)
- 마스터키(Masterkey)
- 키메라(Chimera)
각 범주는 악성 코드가 CPU 내부 보안 프로세서 영역, 즉 비밀번호와 각종 인증 정보 같은 민감한 데이터가 저장된 곳에 접근하는 방식을 나타냅니다. 그중에서도 키메라가 가장 강력한데, 해커가 프로세서에 직접 악성 코드를 주입해 시스템 전체를 공격에 무방비 상태로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마이크로소프트의 최신 보안 기술인 Credential Guard조차 이런 유형의 공격은 막아내지 못합니다. 이는 AMD가 직접 대응하지 않는 한 대부분의 소프트웨어 패치는 무용지물이라는 뜻입니다. 키메라의 경우 CTS-Labs는 "수정 자체가 불가능하며 우회 방법(workaround)이 필요하다"고 진단했습니다.
또한 "우회 방법을 마련하는 일은 어려울 수 있고, 예상치 못한 부작용을 낳을 수도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우회 방법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불분명하지만, 프로세서의 일부 기능을 배제하는 새로운 커널 수준 드라이버를 작성하거나, 취약점을 제거한 신형 CPU를 생산하는 것을 뜻하는 것으로 추측됩니다.
화이트페이퍼에 따르면 나머지 취약점 범주들은 서로 결합할 경우, 해커가 보안 프로세서(Secure Processor)에 지속형 악성코드를 심어 산업 스파이 활동에 악용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공개 과정에서 드러난 수상한 점들

CTS-Labs는 이번 보고서를 내놓기 전까지는 사실상 이름 없는 보안 회사였습니다. 따라서 모든 내용은 한 번 걸러 들을 필요가 있습니다. 이 회사에 대해 의문을 갖게 만드는 요소는 세 가지 더 있습니다.
- AMD가 아닌 언론에 먼저 공개: 이들은 AMD에 보고서를 전달하는 대신 언론에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화이트페이퍼 원본은 찾기가 매우 어렵고, 언론 역시 전문을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AMD도 이러한 행태를 지적하는 성명을 냈습니다. "이 회사는 AMD에 이전까지 알려지지 않은 곳이며, 기업이 조사하고 대응할 합리적인 시간을 주지 않은 채 연구 결과를 언론에 공개하는 것은 보안 회사로서 특이한 일"이라는 내용이었습니다.
- 갑자기 생겨난 웹사이트: 해당 웹사이트는 2012년부터 2018년 1월 17일에 공식 사이트로 바뀔 때까지 주차 도메인 상태로 방치되어 있었습니다. 'About Us' 페이지는 amdflaws.com 도메인에서 화이트페이퍼를 공개하기 하루 전에야 만들어졌습니다.
- 다른 회사와 유사한 'About Us' 페이지: 인터넷에 유포된 이미지에 따르면 이 페이지가 Catenoid Security의 것과 상당히 유사합니다. 이 회사는 한때 'Flexagrid Systems, Inc.'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었으며, CrowdCores 애드웨어의 배후로 지목된 바 있습니다. 물론 이것이 특별한 의미가 없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물론 이런 지적이 CTS-Labs가 제기한 정보 자체가 틀렸다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투명성을 위해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들입니다.
일반 사용자는 걱정해야 할까?

라이젠 칩 구매를 계획하고 있다면 이 보고서 때문에 선뜻 결정하지 못할 필요는 없습니다. 프로세서가 공격에 취약할 수 있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해커 입장에서는 결국 사용자가 취약점을 열어주지 않으면 손을 쓸 수 없습니다. CPU를 공략하려는 소프트웨어는 여전히 관리자 권한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두 프로세서 계열 모두의 취약성이 알려진 지금, 루트 권한을 허용하는 애플리케이션을 가려내는 습관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습니다.
물론 어느 날 아침 일어나면 전 세계 모든 시스템, 그리고 내 PC까지 CPU를 노린 공격으로 무너져 있다는 뉴스를 접하게 될 일은 없을 겁니다. 이런 종류의 공격 프로그램도 실행하려면 사용자의 승인이 필요합니다. CPU 보안 장치는 효과가 제한적일지언정, 어디까지나 최후의 안전장치로 존재하는 것입니다.
결국 애플리케이션에 루트 권한을 넘겨준 순간, CPU가 아무리 저항해도 시스템은 위험에 처합니다. 프로세서 내부 메커니즘을 건드리지 않고도 루트 권한만으로 시스템을 완전히 망가뜨릴 수 있는 방법은 이미 널려 있으니까요.
이번 소식이 새 CPU 구매를 망설이게 만드나요? 여러분의 생각을 댓글로 들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