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드로이드의 가장 오래된 고질병 중 하나는 단연 '파편화(fragmentation)'입니다. 플랫폼의 개방성과 커스터마이징 자유도만큼은 높이 평가받지만, 제조사와 통신사에 따라 같은 안드로이드 업데이트가 몇 달, 심하면 몇 년씩 차이를 두고 배포되는 현실은 언제나 안드로이드의 최대 약점으로 꼽혀 왔습니다. 프로젝트 트레블(Project Treble)은 바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등장했습니다.
이 글에서는 안드로이드 8.0 오레오부터 적용되는 이 혁신적인 기능이 무엇인지, 사용자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그리고 언제쯤 그 혜택을 받을 수 있는지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그동안 안드로이드 업데이트는 이렇게 진행됐다

안드로이드 업데이트가 그동안 이처럼 산발적으로 배포된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하드웨어 사양도, 제조사별 UI도, 카메라 모듈도 제각각인 수많은 안드로이드 기기가 시장에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구글이 메이저 업데이트를 배포할 때마다 새 소프트웨어가 기존 스마트폰 하드웨어와 호환되려면 칩셋 제조사로부터 새 드라이버를 받아야 했습니다. 여기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연결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HAL(Hardware Abstraction Layer, 하드웨어 추상화 계층)입니다.
그런데 지금까지는 칩셋 제조사가 작성하는 저수준 코드, 이른바 '벤더 구현체(vendor implementation)'가 안드로이드 프레임워크의 나머지 부분과 분리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대형 업데이트가 나올 때마다 칩셋 제조사는 코드를 다시 손보고 드라이버를 갱신해야 했고, 그 후에야 삼성이나 HTC 같은 기기 제조사에 새 OS가 전달될 수 있었습니다. 즉, 메이저 업데이트가 나올 때마다 스마트폰 벤더 전체에 비효율적인 작업이 반복된 셈입니다.

여기에 더해, 업데이트는 각 통신사의 승인 절차까지 거쳐야 합니다. 통신사들은 OS에 자신들만의 규정과 요구 사항이 반영되었는지 따져보기 때문에, 업데이트가 늦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가 충분히 짐작되실 겁니다.
프로젝트 트레블이 안드로이드 업데이트를 바꾸는 방법
프로젝트 트레블 덕분에 안드로이드 프레임워크의 일부가 나머지 영역(업데이트 때마다 개발자들이 손대는 부분)과 분리된 새로운 '벤더 인터페이스(vendor interface)'로 전용됩니다. 이로써 칩셋 제조사는 안드로이드 업데이트가 나올 때마다 드라이버를 새로 손볼 필요가 없어집니다. 드라이버가 더 이상 운영체제의 다른 부분과 묶여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래 이미지를 보면 구조를 한눈에 이해할 수 있습니다.

덕분에 업데이트 과정에서 상당한 수고가 줄어듭니다. 물론 기기 제조사에게는 여전히 할 일이 많습니다. 자사 UI, 앱, 독자 기능을 얹어야 하니까요. 하지만 HAL에 담긴 핵심 요소는 더 이상 매번 수정할 필요가 없어진 것입니다.
좋은 소식이긴 한데, 정작 사용자에게는 무슨 의미일까요?
프로젝트 트레블이 주는 실질적 혜택
먼저 알아두어야 할 점은, 프로젝트 트레블은 안드로이드 오레오 이상을 탑재한 기기에만 적용된다는 사실입니다. 구버전 안드로이드에서 오레오 업데이트를 기다리고 있다면, 예전처럼 한동안 더 기다려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오레오부터 탑재된 기기라면 이야기가 다릅니다. 안드로이드 업데이트가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도착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롤리팝 업데이트를 2년씩 기다리던 일은 더 이상 없기를 바랄 뿐입니다.
XDA 개발자들의 분석에 따르면, 커스텀 ROM 애호가들에게도 좋은 파급 효과가 있습니다. 프로젝트 트레블 덕분에 ROM 이미지가 더 이상 특정 칩셋에 종속되지 않으므로, 이론상 하나의 이미지를 여러 기종에 그대로 사용할 수 있고, 릴리즈 속도도 크게 빨라질 수 있습니다.
실제로 XDA 개발자 미샬 라만(Mishaal Rahman)은 유튜브에 공식 누가 업데이트조차 받지 못한 화웨이 메이트 9에서 안드로이드 오레오가 구동되는 영상을 올렸고, 동일한 오레오 이미지가 여러 제조사와 칩셋의 폰에서도 그대로 작동했다고 밝혔습니다.

라만은 또한 프로젝트 트레블 덕분에 언젠가 하나의 안드로이드 ROM 이미지가 수십 종의 서로 다른 폰에서 작동하게 될 가능성도 열렸으며, 이는 개발 과정을 획기적으로 단순화할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맺음말
구글의 끊임없는 노력 덕분에 안드로이드의 최대 고충 중 하나가 해결되고 있으니, 앞으로 사용자에게 좋은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프로젝트 트레블은 폰의 지원 기간이 현재의 2년 남짓에서 더 늘어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지만, 이는 결국 OEM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구형 폰 지원을 끊고 신형 판매로 수익을 내는 것이 이득이라면, 제조사들이 자진해서 지원 기간을 늘리기는 쉽지 않겠죠. 그래도 프로젝트 트레블은 그런 가능성을 연 셈입니다. 사용자들이 OEM에 목소리를 모은다면, 생각보다 빨리 변화가 일어날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