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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퍼펑크(Cypherpunk)란 누구이며, 무엇을 옹호하는가?

암호화폐가 뉴스의 중심에 서면서, 사이퍼펑크 커뮤니티가 다시 한번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블록체인 기술의 활용이 확대된다는 것은 전 세계적으로 스스로를 사이퍼펑크로 규정하는 사람들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며, 이는 정부와 법 집행 기관들에겐 우려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사이퍼펑크는 누구이며, 어디에서 왔고, 무엇을 원하는 걸까요?

사이퍼펑크란 무엇인가? 그 기원과 역사

사이퍼펑크 운동에는 정확한 탄생일이 없습니다. 다만 그 기원은 1970년대 중반, 미국 정부가 데이터 암호화 표준(DES)을 공표하고 마틴 헬먼(Martin Hellman)과 휫필드 디피(Whitfield Diffie)가 공개키 암호화에 관한 선구적인 연구를 발표하던 시기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 이전까지 암호학은 극히 소수의 전문 분야였습니다. 오직 군과 정보기관만이 사용했으며, 이 분야의 상당 부분 연구 성과는 기밀로 분류되어 있었습니다.

1992년, 세 친구 에릭 휴즈(Eric Hughes), 티모시 메이(Timothy May), 존 길모어(John Gilmore)가 모여 회합을 가졌고, 이 모임이 훗날 사이퍼펑크 운동의 탄생으로 이어졌습니다.

휴즈는 UC 버클리의 수학자였고, 메이는 인텔에 재직 중인 사업가였으며, 길모어는 선 마이크로시스템즈(현 오라클 소속)에서 일하던 컴퓨터 과학자였습니다. 이 세 사람은 암호학과 프라이버시와 관련된 문제들을 함께 논의했습니다.

같은 시기에 휴즈, 메이, 길모어는 같은 뜻을 가진 사람들의 큰 관심을 끄는 일련의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휴즈는 사이퍼펑크 메일링 리스트를 만들고 최초의 익명 리메일러를 운영했으며, 메이는 '크립토 아나키스트 선언문(The Crypto Anarchist Manifesto)'을 발표했습니다.

사이버 공간에서 새로운 운동이 빠르게 확산되는 것을 본 프로그래머이자 작가, 시민권 운동가인 주디스 "주드" 밀혼(Judith "Jude" Milhon)은 'cipher'를 'cypher'로 바꾸고 SF 장르인 'cyberpunk'와 결합해, 이 커뮤니티를 지칭하는 '사이퍼펑크(cypherpunks)'라는 용어를 만들어냈습니다.

1993년, 휴즈는 사이퍼펑크 운동의 시작을 알린 저작인 『사이퍼펑크 선언문(A Cypherpunk's Manifesto)』을 집필하고 출판했습니다.

사이퍼펑크 운동의 목표와 이념

『사이퍼펑크 선언문』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담겨 있습니다.

"전자 시대의 열린 사회에는 프라이버시가 필수적입니다. 프라이버시는 비밀(secrecy)이 아닙니다. 개인적인 사항이란 전 세계가 알기를 원하지 않는 것이고, 비밀이란 아무도 알기를 원하지 않는 것입니다. 프라이버시란 자신을 세상에 선택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힘입니다."

핵심 목표는 분명합니다. 우리 자신에 대해 무엇을 드러내고 무엇을 숨길지 선택할 권한을 지키는 것이며, 사이퍼펑크들은 정부와 기업의 간섭 없이 이를 실현하고자 합니다.

여기에 더해 많은 사이퍼펑크들은 정부가 국민을 대상으로 대규모 감시를 진행하고 있으며, 이러한 감시 프로그램을 통해 중요한 데이터를 수집·보유하고 있다고 믿습니다. 에드워드 스노든이 폭로한 PRISM, NSA, GCHQ 등의 데이터 수집 프로그램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이는 사실입니다.

금융 분야에서 사이퍼펑크들은 돈이 오가는 모든 거래에서 정부와 중앙은행의 개입이 없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들은 하나의 중앙 시스템이 운영하는 금융 기관으로는 사기, 절도, 자금 세탁 같은 범죄를 막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신념은 비트코인을 비롯한 암호화폐의 탄생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사이퍼펑크는 무엇을 하는가?

사이퍼펑크들은 어떻게 자신들의 이익을 방어하고 실현할까요? 선언문은 이렇게 답합니다.

"우리 사이퍼펑크는 익명 시스템 구축에 헌신합니다. 우리는 암호학, 익명 메일 전달 시스템, 디지털 서명, 전자 화폐를 통해 프라이버시를 지켜나갑니다."

지난 수십 년간 사이퍼펑크들은 이 운동을 뒷받침하는 수많은 암호학 기반 기술을 만들어냈습니다. 예를 들어 1997년, 영국의 사이퍼펑크 아담 백(Adam Back)은 스팸 메일과 사이버 공격을 제한하기 위한 익명 거래 시스템인 해시캐시(Hashcash)를 개발했습니다.

이어서 1998년, 컴퓨터 엔지니어 웨이 다이(Wei Dai)는 "익명성을 갖춘 분산형 전자 화폐 시스템"인 비머니(b-money)에 관한 제안을 발표했는데, 이는 비트코인과 같은 암호화폐 개발의 청사진이 되었습니다. 다이의 공헌은 이더리움 최소 단위가 그의 이름을 따 '웨이(Wei)'로 명명될 정도로 큽니다.

2004년에는 개발자 할 피니(Hal Finney)가 아담 백의 해시캐시를 발전시켜 최초의 재사용 가능한 작업 증명(proof of work) 시스템을 만들었고, 이는 훗날 암호화폐의 토대가 되었습니다. 피니는 2009년 비트코인이 출시되었을 때 최초의 비트코인 수령자이기도 했습니다.

사이퍼펑크들이 작성한 코드와 스크립트는 대부분 무료이며 인터넷에서 누구나 접근할 수 있습니다. 프라이버시 권리의 옹호자로서, 사이퍼펑크들은 동료들이 서로의 코드를 사용하고, 공격하고, 개선하여 최대한 안전하게 만들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결국 하나의 혁신이 또 다른 혁신 위에 쌓이면서, 사이퍼펑크 운동은 미국과 영국을 넘어 전 세계로 서서히 확산되었습니다.

주목할 만한 사이퍼펑크들

『사이퍼펑크 선언문』에서 휴즈는 사이퍼펑크의 개인 신원은 "중요하지 않다"고 썼고, 이 운동은 일종의 지하 운동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일부 멤버들은 이 분야에서의 활동으로 국제적인 헤드라인을 장식했습니다. 21세기 가장 잘 알려진 사이퍼펑크 중 일부는 여러분도 분명 들어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 줄리언 어산지(Julian Assange): 위키리크스(WikiLeaks)의 창립자로, 아마도 현재까지 가장 널리 알려진 사이퍼펑크입니다. 위키리크스는 2006년에 출범해 2010년대 초반에야 세계적인 반향을 일으켰지만, 어산지는 자신이 이미 1993년이나 1994년부터 사이퍼펑크 운동에 참여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 제이콥 애플바움(Jacob Appelbaum): 어니언 라우팅(onion routing) 기술을 사용하는 익명 웹 브라우저 토르(Tor)의 개발자 중 한 명으로, 위키리크스의 대변인으로도 왕성하게 활동했습니다.
  • 브램 코헨(Bram Cohen): 파일 공유 플랫폼 비트토렌트(BitTorrent)의 창립자로, 2017년 치아 네트워크(Chia Network)를 공동 설립하고 암호화폐 치아(Chia)를 개발했습니다.
  • 사토시 나카모토(Satoshi Nakamoto): 비트코인의 창시자로, 사이퍼펑크 커뮤니티의 또 다른 거물입니다. 그러나 이름 외에는 사토시 나카모토의 정체에 대해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스스로를 사이퍼펑크라고 밝힌 적은 없지만, 에드워드 스노든의 사례는 정부 감시의 대표적인 사례로 자주 인용되며, 정부 통제로부터의 독립을 추구하는 사이퍼펑크 운동의 목표에 신뢰성을 더했습니다.

사이퍼펑크는 사라지지 않는다

기술의 발전이 데이터와 프라이버시에 관한 새롭고 중요한 질문들을 계속 던지고 있는 한, 사이퍼펑크와 같은 커뮤니티의 존재는 자연스러운 일로 보입니다.

암호화폐로 이어진 다양한 기술의 이면에는 사이퍼펑크들이 있었습니다. 암호화폐가 주류의 관심을 얻었다는 사실 자체가 사이퍼펑크 운동의 성공을 증명하는 증거입니다. 사이퍼펑크들은 계속 앞으로 나아가고 있으며, 당분간 그 흐름이 멈출 기미는 보이지 않습니다.